그 아이가 아니예요.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 위기의식과 절망감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던 주제를 마침 이 친구가 포스팅도 했길래 낼름.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일에서 문제의 그 친구와 그를 비난한 사람들의 관계를 선뜻 한 마디로 정의내려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민족주의니 파시즘이니 팬덤이니 다양한 시각의 해석(이라기보다 비난)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를 가만가만 지켜만 보면서 생각한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건 아마 그 동안 내내 갈 곳을 찾지 못했던 어떤 분노의 분출이라고.

만일 저 친구가 '온전한' 한국인으로 이게 싸이월드에서 벌어진 사건 정도였다면, 어지간히 개념없다고 배부르게 욕을 먹고 팬들은 좀 떨어져 나갔을지언정 (뭐 아마 대충 그 정도 두들겨 맞아야 할 잘못은 했다고도 본다. 누구나 중고딩 때 저지른 하이킥감의 흑역사 한두 개쯤은 있는 법이니) 일이 이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친구가 혹시 클래식을 하거나, 수영을 하거나, 하다못해 미술이라도 하는 (즉, 일정 이상의 전문성이나 재능이 필요한 것이지 대중에게 어필할 필요가 크게 없는) 친구였다고 하면 '넌 그런 정신머리로 크게 될 수 있을 리가 없어' 라는 악담은 좀 들었을지언정 이렇게 쫓겨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 사실 문제의 핵심은 이 친구가 '미국과 한국의 이중국적'과 '자신에게 돈을 벌게 해 주는 대중을 우습게 보는' 두 가지 코드를 동시에 건드렸다는 데 있다. 이 코드는 '세금은 탈세하고 서민 등을 쳐서 부자가 된 놈이 자식은 원정출산해서 이중국적을 만들고 병역 면제시킨다' 는 한국의 '부정적인 가진 자' 이미지를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넌 사실 미국인이잖아! 그런 주제에 감히 한국인을 비웃으면서 한국에서 돈을 빼 가려고 들어!?' 라는 열화와 같은 비난은 사실상 이 '더러운 강부자들' 에 대한 반감과 기묘한 패배감을 합쳐서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고, 박재범이 (정신차리고 보니) 그 자리에 들어가 앉아 그 엄청난 집중포화를 한 몸에 감당해야 했던 것은 아마 일종의 사고에 더 가까웠을 게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사실 나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쓰고 싶지 않지만 별 수 없이) 두들겨 패서 쫓아보낸 그 아이가 별로 뭐 그렇게 가진 자도 아니었다는데 있다. 미국에서 홀홀단신으로 건너와 7명이 하는 그룹 중 한 명으로 이제 막 뜨기 시작하는 찰나였던 아이가 가진 게 있을 리가 있나. 돈을 벌었다면 JYP는 혹시 조금 벌었을지 모르되 그 돈이 박재범 주머니 채워줄 만큼까지 돌아갔을 리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던 거라면 '아 이제부턴 내 세상이야!' 라는, 딱 그 시점에서 그 나이가 가질 법했을 꿈 정도겠지. 우리가 집중포화로 깨뜨린 것이 결국 세상의 부조리도, 용서 못할 무개념도, 잘못된 사상도 아니고 그저 스무 살 남자애의 토실토실한 꿈이었다니, 딱 석 달만 지나서 돌아봐도 가슴 아플 일이다. 물론, 그 때쯤에는 대부분 잊어버리겠지만.


ps. 이런 경우에 왜 꼭 군대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지겨워, 라는 소리를 몇 번 들었는데, 사실 나는 이 경우의 '군대'가 우경화된 민족주의를 함축하는 마초적인 파시즘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본다. 여기에서 '군대' 란 '아무런 빽도 연줄도 힘도 빌리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 한국의 사회를 헤쳐가는 남자가 되겠다는 선언'의 두자요약과 더 비슷해 보인달까. 대체 어쩌다가 국방의 의무가 이 꼴로 전락해 버렸는지는 한심한 노릇이지만, 아무튼 여기에서 '한국에 귀화해서 군대나 가라' 는 '정통 한국인이 되어라' 라는 강요가 아니라 '한국의 서민이 되어라' 라는 강요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얘기다.

ps2. 강만수 "저출산 문제 해결 위해 이중국적 허용 검토" 
이런 기사를 볼 때 정말 가루가 되도록 네티즌을 까고 싶어지는데, 연예인 깔 기력 있으면 그 힘으로 저런 거나 까라. 서민은 안중에 없고 부자 혜택만 준다고 MB 욕할 것도 없다. 당장 까기 쉬운 연예인은 그리 신나게 두들겨 패면서, 왜 저 인간한텐 그런 넘치는 기운 안 써주나. 저긴 10대도 아니라서 철없던 시절 얘기라고 쉴드 드립할 것도 없다. 아니면, 정말로 쟤는 잘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질투가 안 나서 안 까는 것인가? 그게 진실인가? (...)

ps3. 이재용 전무 "나는 사는 게 피곤하다고 불평할 자격 없어" 
real 가진 자는 여러분에게 꼬투리 따위 잡히지 않습니다 ㄳ
by 난나 | 2009/09/11 03:35 | 여기 없는 낙원 | 트랙백 | 덧글(3)
패션에 관한 단상 - Style을 보고 짧게.

그건 터쿼즈 블루가 아니라 정확히는 셀룰리언 블루야.

2002년에 오스카 드 라 렌타가 셀룰리언 블루 가운을 처음 발표했지. 그 후에 입 센 로랑이 밀리터리룩의 셀룰리언 블루 자켓을 선보였고, 연달아 8명의 다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 셀룰리언 블루가 등장하며 전성기를 열었어.그리고 그 유행이 끝나자 셀룰리언 블루는 백화점에서 할인매장으로, 다시 끔찍한 캐주얼 코너로 넘어가서 결국 너에게까지 도달한 거야.
하지만 처음 발표된 이후 흥망성쇠를 거쳐 마침내 네 손에 이르는 동안, 그 셀룰리언 블루는 수백만 달러어치의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했어.

정말 우습지 않니?
패션계와는 상관없다는 너도 그 패션계 사람들이 만들어낸 블루를 입고 있다는 게?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中


그냥 잊어버리기는 좀 아까우니 짤막하게.

드라마 '스타일' 6회를 보았다. 물론 챙겨보는 건 아니고, 채널 돌리다 김혜수가 너무 예뻐서 보았다. (고현정 때문에 선덕여왕에도 종종 같은 경우가 있다) 재미는.... 없다고 구구절절 까서 뭐하나. 넋놓고 이쁘다 하면서 잘 봤으면 됐지. 내가 하고 싶은 건 좀 다른 종류의 한 마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어디에서나 진리다. 하물며 '보이기 위한' 노력의 집결체인 패션에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 제아무리 명품을 몸에 휘감아도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보람이 있는 것이고, 내가 지금 무엇을 걸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패션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언가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곧 그에 상당하는 관심의 표현이고 애정의 표현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스타일 200호 발행 기념 파티에서 누가 무슨 드레스를 입었어야 하는지는 꽤나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박기자는 자신이 어떤 드레스를 어떤 의미 때문에 원하는지 매우 정확히 알고 있었고, 자신이 그 드레스를 걸쳤을 때 어떤 결과를 바라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녀라면 대신 고른 그 파란 드레스에도 분명히 무언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서 입었을 법 하다. 그것은 잘 아는 누군가가 대신 인맥 동원해서 공수해 준 드레스를 '너무 예뻐요! 그런데 제가 입기엔 등도 너무 파였고 괜찮을까요?' 라면서 아무 생각없이 걸친 주인공과는 격이 다르다. 단순히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가' 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그 옷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대체 그들이 애초에 패션을 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의미를 모르고 200벌 한정 생산 드레스를 멋들어지게 걸쳐보았자 개발의 편자요 돼지 목의 진주일 뿐. 게다가 우리의 주인공이 베스트 드레서가 된 것조차 그 의미를 꿰뚫어 본 것이 아니라 박기자를 질투하는 사람들의 장난질일 뿐이니 (설상가상으로 그 드레스를 처음에 요구했던 박기자조차 결국에는 그 드레스를 알아보지 못하니) 나로서는 해당 드레스의 버림받은 운명에 통한할 뿐이다. 적어도 패션을 중심 아이템으로 다룬다는 드라마에서 이렇게까지 패션이 우습게 취급당하다니 놀라울 따름.

by 난나 | 2009/08/17 21:37 | 일상의 쳇바퀴 | 트랙백 | 덧글(0)
인간이기에.

[謹弔] 인간 노무현을 보내며

끊김없이 이어지는 긴긴 시간 위에서
숨돌릴 여유 한 번 없이 순간마다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는데
어찌 그 선택들이 하나같이 바르기를 기대하겠나.

우리 그러지 말자.
그리고 그것을 포기라고 부르지 말자.

포기했다는 것은,
어차피 모두가 올바를 수 없다면
나는 굳이 바르게 선택하고자 하지도 않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다.

인간이기에, 이상을 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이상을 잡으려고 한다.

나는 그가 인간이기에 좋아했다.
나는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명복을 빕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헛된 삶은 아니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by 난나 | 2009/05/23 15:07 | 여기 없는 낙원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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